윤봉길 의사
김창숙 선생
매헌로, 매헌초등학교 등 서초구 곳곳에서 보이는 지명은 윤봉길 의사의 호 ‘매헌’에서 유래됐다. 윤봉길 의사의 삶과 업적을 올바르게 알리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1988년 12월 1일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해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초구 매헌시민의숲 안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건립했다.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야학회를 창설해 문맹퇴치와 농촌문화 계몽에 힘썼다.
농촌 계몽운동이 독립운동으로 가혹한 탄압을 받자 윤봉길 의사는 더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22살의 나이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사나이는 집을 나서지만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란 비장한 유시를 남기고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제의 전승축하식장을 폭파하는 의거를 일으켜 당시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우리 민족 불굴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나라를 위해 24년의 짧은 생애 전부를 바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2월 19일에 차가운 일본 땅에서 순국했다. 중국의 국부(國父) 장개석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이 못한 쾌거를 윤의사가 이뤄냈다”며 윤의사를 칭송했다.
이러한 윤의사 기념관이 서초구에 건립된 것은 서초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어릴 때 읽은 각종 서적, 상하이 홍구공원에 투척한 폭탄(모조품), 백범 김구 선생과 교환한 회중시계가 있다.
공연과 전시, 문화프로그램들이 자주 열리는 심산기념문화센터에는 심산 김창숙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로 한평생 지조를 지켰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평가받고 있다.
1879년 경북 성주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김창숙 선생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에 유림 선비들의 이름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 유림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광복 이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며 교육에도 힘썼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심산김창숙선생 기념사업회에서 2011년 심산기념문화센터를 설립하였으며 지역사회 문화예술사업 지원에 힘쓰고 있다.
문의
•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매헌로 99) [지도보기] ☎02.578.3388
• 심산 김창숙 기념관(사평대로 55) [지도보기] ☎02.3477.2461
글 서리풀기자 김수인